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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그룹의 시작과 현재
Wed Sep 07 10:34:00 CEST 2016 프레스 키트
BMW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바이에른의 중심지 뮌헨에서 항공기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칼라프, 막스 프리츠, 카라프와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가 합작하여 항공기엔진 메이커인 바이에리쉐 모터제작회사(독문: Bayerische Flugzeugwerke AG, 영문: Bavarian Aircraft Works: 항공기 제조업체)를 설립하면서 태어났다.
BMW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바이에른의 중심지 뮌헨에서 항공기엔진 회사를 운영하던 칼라프, 막스 프리츠, 카라프와 구스타프 오토(Gustav Otto)가 합작하여 항공기엔진 메이커인 바이에리쉐 모터제작회사(독문: Bayerische Flugzeugwerke AG, 영문: Bavarian Aircraft Works: 항공기 제조업체)를 설립하면서 태어났다.
1917년에는 바이에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라는 설비회사를 인수하면서 약자인 BMW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만든 엔진은 1차 대전 때 독일 공군기에 쓰여 항공기 엔진 제작분야에서 부동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BMW는 1918년에 AG(Aktiengesellschaft, 주식회사)가 되면서 현재의 BMW로 상호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BMW가 만든 항공기 엔진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독일 공군기에 장착되었으나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베르사유조약에 의해 항공기 제조가 금지되었고 BMW는 시련에 부딪쳤다. 이후 1923년 R32를 시작으로 모터사이클 제작에 손을 댔고, 때마침 유럽에서 일어난 모터사이클 붐으로 BMW 모터사이클은 큰 인기를 누렸다. 1928년 BMW는 최초의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BMW는 1928년 영국의 오스틴 세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딕시를 인수해 15마력의 힘을 내는 BMW 3/15를 최초로 만들었다. 1933년에 선보인 6기통 엔진을 단 BMW 303은 BMW 디자인의 사인과 키드니 그릴을 단 최초의 BMW였다. 1936년에는 6기통 80마력 엔진을 얹은 로드스터 BMW 328을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한 BMW는 1963년과 64년에 들어서야 브랜드로서 확실한 기반을 확립했으며, 1966년 3월 자동차 언론계가 만장일치로 갈채를 보낸 1600-2를 출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후 BMW는 전 차종에 걸쳐 세단의 중후함과 스포티한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안락한 승차감, 어떠한 상황에서도 운전자를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정성, 신뢰감을 주는 엔진 성능 등으로 운전의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프리미엄 자동차로 손꼽히고 있다.
1960년대 뉴클래스의 대성공으로 뮌헨 공장이 병목현상에 시달리자 경영진은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 결과 독일 내 란츠후트 공장, 딩골핑 공장이 합류했고 1970년에는 딩골핑 부품 물류 센터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73년 5시리즈 생산을 시작하면서 딩골핑 공장은 대형 모델 생산에 뮌헨 공장은 중소형 모델 생산에 주력했다. 1973년에는 처음으로 독일 이외의 지역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로슬린에 조립 공장을 열었다.
1970년 건축한 본사는 ‘4 실린더 건물’로 불리기도 하는데 첨단 기법을 적용한 이 건축물은 완공과 동시에 뮌헨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에 일어난 중요 한 변화는 20억 마르크 수익을 올린 것, 본사와 공장 등 인프라 확충, 모터스포츠 사업부를 분리한 것이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5시리즈가 견인했다.
1976년 모터사이클 사업부는 자회사 BMW 모토라드를 설립하여 업무를 이전했다. 그사이 BMW 모터사이클은 몇 년간 레이스에서 성적을 내지 못했던 터라 대회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1978년에 이르러서는 M1까지 냈다. M은 모터스포츠를 의미하며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극대화한 라인이다. 모터스포츠는 BMW의 마케팅 과 제품 개발에 중요했기 때문에, 이를 특화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BMW는 터보엔진에 힘입어 F1에서 1987년까지 아홉 번이나 승리를 거뒀다. 다음 도전은 투어링카 레이스로 M3 개발에 들어갔다. M3는 2도어 콤팩트 스포츠 쿠페로 경주용 기관을 장착했다. 모두에게 확실히 인정받기 위해 처음부터 레이스카로 설계했다. 각종 대회에서 승리를 기록한 M3는 198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투어링카로 자리 잡았다.
1986년부터 BMW는 FIZ(Forschungs und Innovations Zentrum, 연구 혁신센터)를 운영해왔다. 뮌헨 내 흩어져 있던 R&D 시설을 본사 옆으로 모은 것으로 엔지니어, 디자이너, 연구진 등 9,000명이 넘는 전문가가 소속돼 있다. 여기에 협력 업체 연구원 5,000명이 수시로 참여하는데, 총 1만4,000명 중 8,000명은 FIZ에 상주했다.
BMW는 25년 만에 롤스로이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제트엔진 개발•제작에 나섰다. 생산 공장을 인수하고 개발 조립 센터 설립까지 한달음에 진행했고 1993년 운영을 시작했다.
BMW는 1994년 로버 그룹 인수로 영국 내 공장 네 곳을 확보했고 매각 후에도 옥스퍼드 공장과 스윈던 공장은 그대로 유지했다. 뉴 MINI는 전통대로 옥스퍼드 공장에서 생산을 맡았고 큰 인기를 누렸다. 2001년에는 MINI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스윈던 공장에 햄스홀 공장까지 신설해 총 3개 공장이 MINI 생산을 맡았다. 로버 그룹을 매각했지만 MINI는 BMW의 프리미엄 소형차 브랜드로 남았다. 1997년 선보인 뉴 MINI가 좋은 반응을 얻자 2001년 양산에 들어갔다. 오랜 역사와 개성으로 MINI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발전해나갔다.
1995년 가을, BMW 그룹은 4세대 5시리즈를 출시했다. 개발 모토는 ‘콘셉트의 조화’로 차분한 외관에 내부 기관이 잘 통합된 모델이었다. 섀시와 서스펜션 전체에 알루미늄 재질을 적용해 안전성을 대폭 높이고 저온 상태에서도 배기가스를 현저히 줄였다. 기존 7시리즈에 탑재했던 카린 내비게이션을 장착했고, 소재와 설계면에서 재활용률은 85%에 달했다.
1998년에는 오랫동안 협업해온 롤스로이스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BMW는 2002년 이후부터 모든 브랜드를 소유하기로 하고 영국 굿우드에 제조 공장을 마련해 신차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인수와 동시에 2003년 제품을 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로버 부분에서는 버밍엄 모터쇼를 통해 로버 75 미니 세단을 출품했다. BMW는 로버의 저가 이미지를 변화시키고자 좋은 품질의 차량을 선보였다. 그러나 계속된 경영 손실로 2000년 MINI를 제외한 로버 그룹과 브랜드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일과 사생활이 분리됐고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이런 시점에서 BMW는 새로운 브랜드에서 오프로드 자동차를 출시할 것인지, 자체적인 세그먼트에 포함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고 스포츠형 세단에서 그 답을 찾았다. 1999년 BMW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X5를 출품하며 세그먼트를 새롭게 만들었다. 1999년 르망 24시 우승에 이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Z8 로드스터를 공개했다.
2004년 C 세그먼트 시장이 커지면서 3시리즈 콤팩트를 독립된 라인으로 변경해 1시리즈로 새롭게 선보였다. 1시리즈는 BMW의 탁월한 균형감각과 효율적인 에너지 활용을 적용한 라인으로 터보 디젤엔진을 장착한 118d의 경우 ‘2008 올해의 친환경차’로 선정되는 등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BMW 그룹의 세 브랜드는 매년 10% 안팎의 성장을 거듭했고 유럽, 북미 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중국 본토의 경우 2006년 판매 4만 대를 넘기며 1년만에 50%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BMW 그룹은 아시아 시장의 성장에 따라 인도에 합작 회사와 공장을 설립해 아시아 내 5개 생산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BMW가 세계시장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혁신을 이뤄낸 덕분이었다. 대표적인 기술적 혁신으로 2003년 도입한 이피션트다이내믹스(EfficientDynamics) 전략을 들 수 있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연구진은 효율성과 주행 역동성을 동시에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2005년 교토의정서가 발효하면서 세계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에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BMW 그룹은 이러한 환경을 직시했고, 2007년 하반기 미래를 위한 재정비 전략 ‘Strategy Number ONE’을 발표했다. 각 부문에서 2020년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익성을 제고하고 브랜드 가치를 증진하기 위한 세부 목표를 세웠다. ‘Strategy Number ONE’은 성장, 미래 시장 만들기, 수익성, 기술 및 고객 부문이라는 네 개의 큰 축으로 구성돼 있다.
프로젝트 i(intelligent•innovative•international)는 인류 대부분이 밀집한 대도시에 필요한 미래 이동성은 지난 100년의 이동성과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2009년 프로젝트 i의 일환으로 전기 콘셉트카 MINI E와 액티브E(1시리즈 쿠페 기반)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액티브E에는 전기차용으로 개발한 커넥티드 드라이브, BMW와 SB리모티브(삼성SDI와 보쉬의 합작회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 등 첨단 장비를 장착했다. 실증용으로 600대를 제작한 MINI E와 1,000대를 제작한 액티브 E를 세계 곳곳에 투입했고 2,100만km를 달리며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후 2011년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둔 서브 브랜드 BMW i를 발표했다. BMW i3는 2013년 11월 BMW 벨트에서 처음으로 고객에게 인도했고 2014년 세계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2013년 양산 모델을 선보인 BMW i8은 BMW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로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과 신소재를 적용한 경량 차체, 그리고 강력하고 효율적인 동력 구동 장치로 지속 가능한 이동성을 현실화했다.
꾸준한 전동화 전환 노력으로 BMW 그룹은 지난 2022년 전세계적으로 약 21만5000대의 순수전기 모델을 판매했으며, 올해 완전히 새로워진 BMW 뉴 5시리즈 및 순수전기차 BMW 뉴 i5를 출시하면서 거의 모든 주요 세그먼트에서 순수전기 모델을 갖추게 됐다.
BMW 그룹은 2030년까지 CO2 배출량을 2억톤 이상 감축하고 향후 10년 동안 약 1천만대의 순수 전기차를 도로에 공급한다는 목표 설정을 통해 지속가능성 제고와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혁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편, BMW 그룹은 BMW, MINI, 롤스로이스 브랜드를 자랑하는 가장 성공적인 자동차 및 모터사이클 업체로 손꼽힌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소형 승용차부터 럭셔리 대형차에 이르기까지 프리미엄 차량만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미학적 디자인, 다이내믹한 성능, 최첨단 혁신기술 등을 토대로 완성된 뛰어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BMW 모토라드 브랜드를 통해 모터사이클 시장에서도 상위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BMW 파이낸셜 서비스를 통해 성공적인 사업을 뒷받침하고 있다.
BMW 그룹은 현재 전 세계에서 30개 이상 생산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140개가 넘는 국가에 걸쳐 글로벌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2022년 전 세계적으로 240만대가 넘는 자동차와 20만 2천대의 모터사이클을 판매했으며, 2022년 회계연도에는 235억 유로의 세전이익과 1426억 유로의 매출액을 기록한 바 있다. 202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49,475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BMW 그룹의 성공은 앞날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사고와 책임 있는 기업활동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회사는 전략적으로 여러 가치와 광범위한 제품군, 자원 보존을 위한 다각적 노력을 통해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인 지속가능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